
나는 그렇게 술을 즐겨하지 않는다.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,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. 하지만 막상 책을 읽다 보니 작가와 술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.
우선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의 술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.
첫 술 부분에서는 나의 첫 술은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. 작가의 첫 술은 고등학교 3학년 100일 주였다. 나의 첫 술은 모르고 먹었던 적과 알고 먹었던 적, 두 가지가 있다.
모르고 먹었을 때는 아마 미취학아동시절 집에 아버지 직장동료들이 모인 저녁이었다. 매운 음식을 먹고 보리차를 찾던 나는 그만 맥주를 마시고 말았다. 한 모금 마심과 동시에 이상한 맛이라고 하며 얼굴을 찌푸리니, 주변에 어른들이 웃었던 상황이 기억난다.
알고 마셨을 때는 태권도 사범님과 함께 수련회를 갔을 때 한 번 마셔보라고 주셨던 KGB였다. 레몬맛에 탄산음료가 마치 음료수와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, 얼굴이 홧홧해지며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지니 도수가 낮지만 그래도 술이구나 싶었다.
또 기억남는 부분은 ‘와인, 어쩌면 가장 무서운 술’ 이었다. 와인 하면 생각나는 2가지 기억이 있다.
첫 번째는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함께 와인 동아리의 행사로 와인 시음회였다. 친구가 구한 티켓으로 시음회를 참석했는데 그 날 내 인생에서 가장 다양한 와인을 마셨다. (엄청 조금씩) 레드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이 달고 맛있어서 이름을 기억하고 싶었는데, 애석하게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. 그때 술이 이렇게 달수도 있구나 느꼈다. 딱 한 가지 기억나는 술 이름이 있는데,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 ‘다다’였다. 저렴한 가격에 맛이 나쁘지 않아서 나중에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던 술이었지만, 여태까지 내 돈 주고 사서 마신 와인은 단 한 병도 없었다..
두 번째는 친구와 함께 간 유럽여행에서 와이너리투어를 간 날이다. 이 날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했는데, 호스트가 와인투어를 추천해주어서 참석했다. 와인 세 잔을 시음할 수 있었는데, 천천히 마시다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마시자 급하게 입에 와인을 털어 넣었다. 투어가 끝나고 지상으로 나오는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났다. 조금씩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가는데 땅바닥이 도는 걸 보니 지구가 도는 게 사실이구나 싶었다. 비틀비틀거리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. 이 날 하루는 숙소에서 죽은 듯이 있었던 날이었고, 나는 두 번 다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이었다.
술이 인생을 바꾼 순간과 지구인의 술 규칙에서는 T라는 등장인물이 나온다. 나는 이 둘을 보면서 작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이 생각났다. 회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술 얘기가 나오면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얘기를 나눴다. 이 음식에는 소주지, 저 음식하면 맥주지.. 나는 그 두 사람을 보면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. 나 또한 술은 아니지만, 작가와 T, 혹은 회사의 두 사람처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분야를 나처럼 좋아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.
좋아하는 분야의 책은 아니었지만,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.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내용을 읽으면 더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, 아무튼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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